
저자(글) 류택규
인물 상세 정보산림특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일계통 대
학에 진학하여 같은 분야 공부를 심도 있게
공부 하였으며, 이어서 우리나라 임업의 본
산인 한국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8년간 연
구한 후 대학에 진출. 후배 양성에 힘 쓰면
서 임업단체에 관여한 평생 임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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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열 교장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54년이 되었지만 6.25 동란으로 전시 중에 광동 2대 교장이 되어 불탄 학교 자리에 천막과 임시교사를 짓고 그 와중에도 동양에 하나뿐인 광동산림고등학교를 세워 광동군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고등학교로서는 많은 임업 일꾼을 배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으셨던 그 공적이야 누가 무엇이라 하더라도 대단하여, 그 은공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는 뜻에서 선생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이 한 몸 한뜻으로 합심하여 정계열 선생 기념 문집을 발간함에 제가 추진 위원장을 맡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면 휴전도 아닌 전시 중 책상이나 걸상 하나 없는 이름뿐인 잿더미 빈터에 방공호를 헐어 임시교사를 세우고 그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한 산림고등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그분의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지금의 학교가 이어 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60년 만에 그 교장님의 추모문집을 발간하다 보니 한편으론 감격스럽고 또 한편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개교 당시 한국의 전후 상황은 지금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못지않게 비참하여 지금의 후배들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들은 세끼 끼니를 채우지 못하고 교장은 그들을 위로해 가며 학교를 떠나야 하는 선생님들을 동지애로 끌어안아 주저앉게 하였고 봉급을 제때에 줄 수 없어 교육열에 불탄 후배 인척들을 모아 교사를 채웠습니다. 그 분의 불굴의 의지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늘 학생들에게 제자인 동시에 학교를 함께 세우는 동지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학생과 제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벽돌을 나르고 서까래를 세우며 가교사와 본 교사를 번듯하게 지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광동산림고등학교가 지속되었다면 산림 계통 요소요소에는 광동졸업생이 자리를 차지하고 대학교보다 취업이 잘 되어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가 몰려드는 산림 분야의 명문학교가 되었을 것이고 선생님께서는 후배들이 내 뜻을 이루어 주었다고 흐뭇해 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게 이루지 못한 점 제자로서 아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늦게나마 추모 문집을 발간하는 데 귀중한 원고를 내 주시고 책을 만드는 데 힘쓰신 동문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광동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추진위원장 주진태
목차
머리말 4
축사 6
Ⅰ. 회고록 11
? 가족의 글 13
? 동료 교사들의 글 37
? 제자들의 글 49
Ⅱ. 광동학원의 초기 역사 89
? 광동의 밝은 빛 90
? 운허 스님과 교육입국의 큰 뜻 90
? 학교 설립의 준비 95
? 광동 초급중학교의 개교(1946.4.8.) 98
? 운허 스님과 춘원 이광수 105
? 교사의 신축과 교육의 실상 113
? 눈서리 되게 쳐도 124
? 전쟁 중의 학교 상황 124
? 학교건물 없던 수난의 시기(1951.11.1.~1952.5.24.) 128
? 광릉 본 교사 터의 가교사 시대(1952.5.24.~1955.1.) 135
? 전란 중의 교육 현황 150
? 광동산림고등학교의 개교 162
? 남양주의 인재 육성의 산실 광동중·고등학교 168
Ⅲ. 숲 173
? 나무를 심는 것은 희망을 심는 것 175
? 숲의 혜택을 도민께 드릴 때다 180
? 땀과 정성으로 가꾼 숲 180
? 치산녹화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다 181
? 숲을 가꾸고 숲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182
? 생명의 숲, 치유의 숲 184
Ⅳ. 비문 189
? 묘비(墓碑)의 글 190
? 정계열 교장 공적비 192
Ⅴ. 광동산림고등학교 출신 임업인들 197
Ⅵ. 편집후기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