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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미 설계서의 제안에 따라 정해진 기자재의 구입을 목전에 두고 중단 되었는데 예정대로 사업이 진행되었더라면 선행기간을 10년으로 보아, 늦어도 80년대 중반에 우리는 핵물질(플루토늄)을 확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재처리프로젝트가 중단되기는 하였지만 재처리프로젝트와 화학처리 대체사업의 성과로 재처리에 필요한 기술 자료를 축적, 확보하고 재처리의 독자수행능력을 키우게 된 것은 그래도 다행스런 일이다.
목차
머리말 ?8
1. 대학원 시절과 원자력연구소와의 인연 ?16
대학원 시절의 이야기 | 당시의 원자력연구소 | 연구원 생활
2. 유학 ?20
미국 대학 생활 | 제2의 대학 | 지금의 전공에 관심을 둔 시기 그리고 기초과학 | 유학 시절 기억나는 일들 | 미국행 | 은인 | Coffey Family
3. 핵개발 프로젝트 ?43
한국에 돌아오게 된 계기 | 미국에서 돌아오는 제안을 했을 때, 처음부터 그 프로젝트를 이야기했나 | 주재양 박사님과의 관계는
4. 재처리 사업 ?47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언제쯤인가 |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 팀워크와 사명감 |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 | 연구팀 안에 있었던 세부 분과는 어떤 것들이었나 | 필요시 자문을 받았던 과학자들은 어떤 분들이고 어떤 역할을 하였나 | 국방부에도 같이 작업하던 연구소가 있었나 | 나름대로 무기화하기 위해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했던 것인가 | 보고 라인과 이후 체계의 변화 | 재처리 프로젝트 | 핵연료주기 기술 | 재처리란 무엇인가 | 자르는 것도 기계가 있다 | 연구소에 들어오기 전, 그전 단계는 끝난 것인가 | 순도가 어느 정도나 되어야 하는 것인가 | 실험을 모의 용액(Mock up Solution)으로 했지만, 그때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나 | 프랑스로부터의 도입 과정 | 그럼 어떻게 하고 있나, 기다리는 동안에도 처리할 것은 생기지 않는가 | 대덕공단은 그 사업 때문에 생긴 것만은 아닌가
5. 프랑스와의 협상과 거래 ?76
청와대에서는 시작부터 프랑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나 | 프랑스와 처음 한 일은 무엇인가 | 프랑스에서 제시한 안은 어떤 것이었나 | 프랑스에서 기본 계획안을 짠 상대는 어디인가 | 처음 프랑스에 가서 일하기 시작했던 때 | 당시 언론에 거론된 주재양 박사님과 윤석호 박사님 | 프랑스만 다녔던 것인가 | 프랑스와 접촉을 할 당시 중앙정보부가 어느 정도 개입을 했나 | 어디서 나오는 소식통인지는 모르겠는데, 프랑스에 다니는 것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독일 코드를 이용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무슨 뜻인가? | 외국어(불어) 공부 | 미국의 압박과 프랑스의 태도 | 접대 문화
6. 미국의 압박 ?94
미국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언제인가 | 그 최후의 개입이란? | 미국에서 프랑스에도 압력을 넣었나 | 미국의 압력이 계속되다 | 한국, 미국 외에 그 분과에 참가한 다른 나라들과 핵발전소(Nuclear Power Plant)는 어디인가 | 왜 우리만 막았던 것일까 | 활동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간섭 |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은 어떠했나? 두렵지는 않았나? | 미국의 압력 때문에 그만둘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나
7. 프로젝트의 표면적 중단 ?112
프로젝트가 중단된 이유 | 대한민국 정부의 문제? 프랑스 정부의 문제? | 중단되었다는 걸 알게 된 후 | 캐나다에서 도입하기로 했던 연구용 원자로는 어떤 것이었나 | 아이젠버그 | 국내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만들어 보려 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그렇게 무산이 되고…… 그럼 대체 사업은 언제 시작했나 | 처음 팀에 들어갔을 때, 정부 차원에서 어느 정도가 되면 우리가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핵의 관계
8. 화학처리 대체 사업 ?121
INFCE에서 돌아온 다음, 제일 처음 하게 된 일은 무엇인가 | 짜깁기 대체 사업으로 갔을 때는 효율성도 떨어지고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 대체 사업으로 넘어갈 때, 윤 소장님 등 여러 분의 의견은 어떠했나 | 과기처에서는 계속 지휘를 했나 | 그때도 설계는 프랑스에서 받은 것인가 | 그럼 대체 사업을 할 때 프랑스는 거리낌이 없었나 | 폐기물 처리 시설은 확인을 못 한 것인가 | 미국에서는 더 이상 압력이 없었나 | 인터뷰 | 정권이 바뀐 후에도 일은 계속되었나 | 그렇게 할 일이 많았는데 왜 아주대로 가게 되었나 | 그 행사는 공식적으로 큰 행사는 아니었던 것인가 | 대체 사업이 끝나자 쫓겨난 유치 과학자들? | 아주대에 들어올 때까지도 미국이나 한국 정부에서 주시하지 않았나 | 당시 극비 기록들이 상당히 많았을 것 같은데, 그 기록을 담당하는 전문 요원이 있었나 | 대체 사업으로 전환됐을 때, 그래도 연구원들 중 핵심 기술 관련 기록은 좀 챙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이는 없었나 |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 박정희 대통령 사건이 있었던 날, 연구소의 분위기는 어떠했나 | 스톱 사인 | 그날 이후 두 대통령 | 언론에 공개한 핵도면
9. 핵의 의미 ?144
핵에 대한 생각 | 대상은 북한이었나 아니면 일본도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 하나 | 당시 미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압력이 있지 않았나 |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반응 |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은 | 만일 그때 미군이 철수를 한다거나 핵우산을 제거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 전두환 정권이 어느 정도 손을 놓고 6공이 비핵화 선언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같이 참여했던 핵심 브레인 중 핵주권을 포기한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이 잘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무엇보다 어렵고도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 그럼 핵개발 노하우는 지금 한국사회에 전혀 전해지지 않은 것인가 | 만약 우리나라에서 핵을 개발하겠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10. 의미의 확대, 픽션화 ?160
발간된 자료에 나오는 ‘프랑스에서의 위험했던 일’이란 어떤 것인가 | 그럼 알려진 것과 실제가 다른 것이 많은가 | 워낙 이 주제가 영웅 스토리화되어 가고 있는 듯한데…… | 주제 자체가 특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설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 이휘소 박사님 | 밀실의 존재 | 국내 우라늄
11. 아주대로 ?170
아주대는 어떻게 오게 된 것인가 |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나 | 대학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나 | 아주대에 온 후 어떤 연구를 주로 했나 | 정부의 과학 정책에 문제가 많았던 것인가 | 노태우 정권 때는 전두환 정권하고는 좀 달랐나 | 연구보다 학교 일에 더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12. 연구의 지속 ?193
재처리 사업과 관련된 일은 이후 완전히 그만두게 되었나 |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까 | 아주대학교의 지원은 어려웠나
13. 무제 ?199
정치계로부터 스카우트 제의 같은 건 없었나 | 유학의 동기 | 유학의 단면 | 그때 그 시절 | 일 그리고 건강 | re-tire
14.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이야기 ?209
긴 휴식 | 붕어빵 | 귀촌 계획 | 인생무상 | 수신제가(부모님) | 無信不立
15. 북핵 문제 ?221
북한 핵 | 북한 핵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1980년대) | 왜 파워가 낮은 것을 갖고 있을까 | 잘 모르니까 기사도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닐까 | 북한 핵 때문에 언론사에서도 많이 찾아왔었나
16. 회고와 당부 ?228
요즘의 과학계 | 한국의 과학적 자료나 연구 관리가 과거에 비해 많이 체계화되었나 | 만약 옛날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같은 일을 할까?
보충 자료 ?233
맺음말 ?305
에필로그 1 ?306
에필로그 2 ?310
참고 문헌/자료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