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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 출처: Pexels
박중언 기자의 칼럼 〈때가 와서 가야하더라도 가장 늦게 가고 싶은 곳, 요양원〉을 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야외 활동이 멈추었을 시기, 운동 교실에 참여하고 있던 일부 노인들이 화상회의를 이용하면서까지 수업을 지속하려 했던 사례가 나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건강’에 집착했을까요?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돌아온 대답은 이러합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면서, 요양원에 최대한 늦게 가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늙음’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 경제적인 문제(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나, 쇠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요양원에 늦게 가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갈수록 고령화가 심해지면서, 각종 노인 돌봄 복지 시스템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늙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듯합니다.
‘늙음’을 달리 보면, 이미 생을 걸어 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생을 겪으며 얻은 삶의 교훈들은 ‘늙고, 낡음’이 아닌, ‘깊고, 정교함’이라는 수식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결코 ‘늙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도달할 미래인 것이죠. 그렇다면 이미 그 미래에 도달하여 있는 사람들(노인)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서쪽으로 난 창』은 그 질문을 공유합니다. 롱텀케어홈(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저자가 수많은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이 책은 생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이 전해 주는 메시지를 아름답고 유려하게 펼쳐 냅니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가득했던 삶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오빠를 믿는다”(19페이지)는 여동생의 응원으로 끝내 삶을 회복한 에드 할아버지, 20살에 타국으로 이민해 묵묵히 일만 하며 살아 내 “나를 구한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118페이지)이라고 말하는 사이먼 할아버지 등 그들이 얻은 삶의 의미는 다 다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들이 말하는 삶의 의미가 배워서 얻을 수 있는 ‘이론적 방식’이 아닌 직접 겪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적 방식’인 것입니다.
『서쪽으로 난 창』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함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다 읽고 나면, 삶에 대한 단 하나의 감각만이 남습니다. 축복도 절망도 아닌 태연함. 삶이 늘 축복일 수는 없지만, 구태여 절망이라고도 할 필요 없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현재를 만끽하며 사는 것이 삶이라는 것. 어쩌면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건 거창한 ‘희망과 교훈’이 아닌 『서쪽으로 난 창』의 노인들이 보여 주고 있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태연함’이 아닐까요.
『서쪽으로 난 창』에서 주는 또 다른 메시지는 ‘이민자로서 겪은 상처와 회복’입니다. 사업 실패로 인해, 캐나다로 밴쿠버로 이민을 간 저자는 롱텀케어홈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다른 인종과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롱텀케어홈의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네가 어디에서 왔건 네 나라로 가 버려”(190쪽)와 같은 모욕을 듣기도 하죠. 하지만 그런 저자를 위로하고 응원한 것도 결국 그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모욕한 노인이 요양원에서 쫓겨날까 봐 걱정하는 저자였지만, 그런 저자에게 “그래도 아팠지?”(186쪽) 물어보는 노인이 있었고, 나아가 스스럼없이 저자를 대하며 함께 감정을 나누었던 곳곳의 많은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저자는 낯선 환경을 버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줌으로써 보답한 것일 테죠.
저자는 “정작 사랑과 위로를 받은 쪽은 그들이 아닌 바로 나”(5페이지)였다고 말하지만, 저자만이 위로를 받은 것은 아닐 겁니다. 묵묵히 곁에서 수신자의 역할을 한 저자로 인해 노인들도 조용히 각각의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늙음, 젊음, 백인, 황인, 여성, 남성 등의 제약 없이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그들만이 나눌 수 있었던 위로였던 것이죠.
이 책의 출판사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의 마지막 정거장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나와 타인, 그리고 우연이 만들어 낸 회복의 여정
삶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나만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내가 타인과(혹은 세상과)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부딪혔는지, 그에 따라 변화하는 게 ‘삶’이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난 창』에는 그런 ‘삶’들이 가득 배어 있다. 이민자인 저자는 스스로를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4페이지)이라고 표현한다. “아무리 달려도 길은 보이지 않았던”(같은 페이지) 캐나다에서 저자는 리타이어먼트 홈(양로원)에서 일하며, 수많은 노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리가 삶을 회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타인에 기대기도 하며, 스스로가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외로움과 괴로움이 가득했던 인생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오빠를 믿는다”(19페이지)는 여동생의 한마디로 끝끝내 삶을 회복해 나간 에드 할아버지가 있는 반면, 20살에 타국으로 이민해 묵묵히 일만 하며 살아 낸 사이먼 할아버지는 “나를 구한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118페이지)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저마다 다른 회복의 방식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넘어져도 결국은 일어서고 만다는 것, 그렇게 다시 걷고야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우연’으로 회복하기도 한다.
“정작 사랑과 위로를 받은 쪽은 그들이 아닌 바로 나란 걸 알았습니다.”(5페이지)
저자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랑과 위로는 노인들도 받았으리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저자의 앞에서 노인들도 고요히 회복했을 것이다. 혈연관계도 아니고, 살아온 세대도 다르지만 ‘리타이어먼트 홈’이라는 우연의 작용이 저자와 노인들을 이어 서로의 구원자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써낸 저자와 읽어 낼 우리도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네 호흡이 멈출 때, 너는 후회 없이 살고 사랑했다 말할 수 있니?”(155페이지)
마지막으로 이 말을 새겨 본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저 현재를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서쪽으로 난 창』이 전해 주는 무수한 이야기를 함축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비롯해, 작은 위로부터 시작하여 삶의 교훈까지 나아간 노인들의 생과 그 생을 아름답게 그려 낸 저자의 문장은 “따뜻하고 향기로운 사랑의 꽃”(7페이지)이 되어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서쪽으로 난 창』은 ‘늙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초대하고, 나아가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자와 노인들이 나눈 ‘제약 없는 우리’라는 위로만으로도 해당 책은 충분히 그 가치를 합니다. 삶이 외롭고 괴로우신가요. 『서쪽으로 난 창』이 그려 낸 이 화합의 장에 함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료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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