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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떠난 꿈 같은 자전거여행,
무작정 미지의 나라에 날아가 페달을 밟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시들어가는 자신을 돌아볼수록 초초함에 참을 수 없었던 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에 심폐소생술이 되어 줄 것을 찾아해맸습니다. 그러다가 매년 생각만 하다가 잊혀지던 버킷리스트를 떠올리게 됐고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질주했습니다.
자전거 타고 300만 원으로 유럽 여행하기!
그 첫 번째 이야기, '독일을 달리다'를 시작합니다.
시내로 나가자 만나 보고 싶었던 괴테의 동상이 곳곳에 있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동상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유럽여행 중임을 아는 친구가 근황을 물을 때도 이 사진을 처음으로 보냈다. 근처를 돌아보다가 괴테하우스를 찾았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도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어서 쉽게 이 곳이 괴테하우스임을 알 수 있었다. 괴테가 태어나 숨쉬며 살았던 곳에 직접 와보니 기분이 묘했다.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찾아 왔다는 즐거움의 묘미가 피어올라 흥분되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지구반대편까지 날아와 자전거로 곳곳을 누비는 재미가 한층 커졌다. 한동안 괴테에 대한 붐이 일면서 조금씩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를 알아 갈수록 그가 삶을 통해 이룬 다양한 분야에서의 성과에 대해 감탄할 때가 많았다.
누구나 들어봤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허정표 작가가 처음 괴테를 만난 건 이 소설로부터였습니다. 작가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독일에서 괴테와 마주쳤을 때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년도 더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고급스러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괴테하우스. 하지만 그의 업적에는 유복함과 엘리트 교육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에 작가는 조금 알 수 없는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내가 묵는 방은 원래 아들이 쓰던 방인데 이사하고 나서 한동안 비어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오니 이상하게 문이 열려 있어 조심스레 들어갔더니 강아지가 배가 고팠는지 몰래 들어와 가방에 들어 있던 빵을 먹어 치웠다. 빵 부스러기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지퍼를 열고 빵만 먹은 걸 보니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사료가 따로 있는데 가끔 장난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대충 청소를 하고 자리에 누웠더니 잠이 쏟아졌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편한 곳에 머물면 불면증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질 것이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작가는 호스트와 함께 아이의 트리하우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톱으로 삐져나온 나뭇가지를 치고 울타리와 지붕을 올린 후 마지막으로 해적기를 올렸죠. 남자게스트만 오는 데에 불평을 하던 아이는 트리하우스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합니다. 지하실에는 트리하우스 재료뿐만 아니라 각종 정비 재료와 장비가 있었는데, 독일도 어려운 시절에는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때가 있어서 많은 독일 가정에는 모두 간단한 도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침공기는 찼지만 숲에서 불어와서인지 정말 상쾌했다. 볼일은 근처에 구덩이를 파서 해결했다. 텐트를 접고 짐을 쌀 때는 똥지뢰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달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천천히 주위를 다니며 하이델베르크성을 돌아봤다. 성은 다리 건너편에서 보는 경관이 훨씬 더 좋았다. 다리 구석에 잠시 쉬면서 길거리 화가라도 된 마냥 스케치도 끄적거려 보았다.
이어지는 언덕으로는 산책길이 있었는데 이름이 철학자의 길이었다. 옛날 괴테가 사색을 하며 거닐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고 곳곳에 벤치가 있어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숲은 울창하고 초목들로 푸르렀다.
작가는 이곳에서 한참을 먼 산과 네카어강을 바라보며 괴테와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고 해요. '괴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지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갑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 직장에서의 트러블, 가족과의 불화 등 스트레스가 몸을 짓누르고 화병이라도 난 것처럼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벤치에 누워 눈을 꼭 감고 심호흡을 하자 숲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공기가 몸 구석구석을 씻어줬습니다. 다행히 조금 진정이 되었고 태풍이 지나간 듯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시내를 벗어나니 양떼목장으로 길이 이어졌다. 폭신한 털에 둘러싸인 양들이 무리 지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옛날 왕이 행차했다는 유적을 둘러보고 마을을 빠져 나와 자리를 잡았다. 식사를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다행히 먼 거리를 단숨에 달리는 바람에 욱신거리던 다리의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 캠핑으로 하루를 보내고 음식을 살 겸 딘스라켄의 마트에 들렀다. 그런데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를 다 뒤지고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아도 없었다. 훔쳐갈 만한 좋은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지금 나에게 있는 전부였기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종일 밖에서 자전거를 타고 야영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세수할 때 물을 덜어 고양이 세수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한국인 부부가 플라스틱 병을 가득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더랍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리고 쑥스러운 얼굴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더니 갑자기 화색을 보이며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딘스라켄 한인회장이라고 소개하며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연락처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정이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