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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포트에 물이 식어 가는지도 모르고 어느새 깊은 한숨과 함께 기도가 시작됐다.
“하나님,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신체적, 정서적 돌봄이 있다는데 저는 그것들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실 거예요. 그 결핍들이 지금의 일그러진 제 자아를 만들었다는 것도 잘 아시죠? 평생 간답니다. 어떡하죠? 부모님은 이제 늙었고, 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잖아요? 하나님이 제 결핍을 채우실 수 있나요?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죠? 제 결핍의 역사가 주장하고 있는 지금의 삶과는 다른 삶을, 앞으로 살아 볼 수 있을까요?”
그때, 오만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바로 그때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 햇살을 타고 글자들이 내려오더니 이내 내 가슴팍에 스며들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내 자리로 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성경을 폈다. 시편 23편을 읽어 내려갔다. NIV 대역성경이었기 때문에 영어 본문도 눈에 들어왔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한글성경의 “부족함”에 해당하는 단어가 “want”인데 ‘결핍’이라고 번역해도 좋다. “주님이 내 목자시니까 나는 결코 결핍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답이 없는 결핍을 하소연하던 내게 주님이 건네시는 말씀이었다. 목자이신 주님은 내가 결핍 가운데 있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시간이 멈춘 듯 시편 23편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한동안 서 있었다. 어느 순간 “shall”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조동사 shall은 말하는 사람의 의지를 나타낼 때 쓰인다. 다시 말해 “결핍 가운데 있지 않으리라”라는 구절은 시편 23편의 저자인 다윗의 신앙 고백인 셈이다.
다윗, 그는 결핍의 아이콘이었다. 여덟 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이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후계자로 기름 부을 자를 찾으러 이새의 집을 방문했을 때 다윗은 여전히 양을 치고 있었다. 사무엘 선지자도 아니고, 친아버지에게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아들이었다. 이를 테면 아버지가 사장인 회사의 신입 사원 공채에 지원했는데 아버지가 1차 서류 심사에서 떨어뜨린 격이다.
형들에게도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 천덕꾸러기였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에 징집된 형들을 만나러 갔을 때 일이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기세에 눌린 이스라엘 군사들이 정신줄을 놓고 도망치고 있었다. 다윗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그들에게 물었다. 그 장면을 본 큰형 엘리압이 성질을 내며 말했다.
“다윗이 군인들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맏형 엘리압이 듣고, 다윗에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너는 어쩌자고 여기까지 내려왔느냐? 들판에 있는, 몇 마리도 안 되는 양은 누구에게 떠맡겨 놓았느냐? 이 건방지고 고집 센 녀석아, 네가 전쟁 구경을 하려고 내려온 것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사무엘상 17:28, 새번역)
거의 막말에 가깝고, 쉽게 말해 이런 거다. “네가 뭐라고 여기 와서 설치냐? 양이나 칠 것이지! 구경났냐? 싸가지라고는 1도 없는 새끼야!” 평소 다윗이 형제들 사이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지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결혼 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목동 출신에 천덕꾸러기 막내로 자란 그가 왕의 사위가 되어 인생 역전을 이루는가 싶었다. 그러나 장인의 살해 위협에 시달리며 13년 세월을 보내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다윗의 도망자 시절, 장인 사울은 다윗에게 시집보낸 작은딸 미갈을 다른 남자와 억지 재혼을 시켜 버렸다(삼상 25:44). 상상할 수 없는 ‘처월드’인데다가 일일 연속극이 못 따라갈 정도로 막장이다.
자식 농사는 어땠나? 배다른 형제지만 동생이 형을 살해했다. 형 암논을 죽인 아우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피해 3년이나 그술땅에 있는 외가에 가서 지내야 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도 2년 동안 아버지를 대면할 수 없었다.
5년 만에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압살롬은 결국 역모를 꾀했다. 친위대를 만들고, 성문 곁에서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과 민원을 처리해 주며 그들의 마음을 훔쳤다. 다윗 정부의 재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지, 압살롬은 그 약점을 공략한 것이었다.
이 방법은 제대로 먹혀들어 압살롬이 거사를 치르던 그날에는 이스라엘의 민심이 다 압살롬에게 쏠릴 정도였다.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도망치는 것뿐. 장인 때문에, 아들 때문에 도망자가 돼야 했던 기구한 인생의 주인공이 바로 다윗이다.
그러나 다윗의 삶에는 늘 하나님이 계셨다. 부족함이 없노라 고백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이유였다. 따라서 시편 23편은 믿음의 고백이자 체험의 간증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시편 23:1~6, 새번역)
우리가 사는 세상….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마냥 천사인 사람도 없다.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짓고, 상처와 아픔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주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을 믿는다면 그 어디든 하늘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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