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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인체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제4대(재위 1418~1450) 왕으로,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하였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측우기 등의 과학 기구를 제작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문화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말은 할 수 있어도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세종 25년(1443년 12월)에 우리의 고유문자이며 표음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28년(1446년 9월)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습니다.
양면 인쇄로 모두 33장이며, 본문 4장과 집현전 학자들(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등)이 쓴 해례(창제 원리를 풀어씀) 29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32.2㎝입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말과 글이 서로 맞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구나.
내(세종대왕)가 이를 안쓰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모든 사람이 이것을 쉽게 익혀 편하게 사용했으면 하노라.”
세종대왕이 남긴 훈민정음,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은 글로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해례는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글입니다.
만든 목적이 분명하고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글자는 한글이 세계적으로 유일합니다. 훈민정음, 곧 한글은 28자로 된 알파벳으로 오늘날 4자는 안 쓰이고 24자만 쓰이는데, 한국어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기와 사용하기에도 편리한 문자체계입니다. 문자체계 자체로도 독창적이며 과학적이라고 인정되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할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상세히 쓰여 있습니다. 우선 사람의 발음기관 모양을 본떠 만든 자음 5자(ㄱ, ㄴ, ㅁ, ㅅ, ㅇ)를 기본으로 17개의 자음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는 ‘ㆍ, ㅡ, ㅣ’을 기본으로 모음 11개를 만들었습니다. ‘ㆍ’는 하늘(天)의 모습을, ‘ㅡ’는 땅(地)의 모습을 각각 본떴으며 ‘ㅣ’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에 대해 당시에는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세종은 한글로 된 최초의 노래인 ‘용비어천가’를 짓는 등 한글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활용하도록 하였습니다.
한글이 점차 보급되면서 서민들은 생각과 뜻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민원 해소, 농업기술의 전수, 친지 간 편지 왕래 등 일상생활에서 한글이 활용되었으며 서민들의 생활 개선과 의식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을 땐 자음과 모음이 총 28자였지만, 오늘날에는 자음 3자와 모음 1자(ㆍ)가 소멸해 총 24자입니다. 1946년 우리 정부는 훈민정음 반포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하였습니다.
중국 최초의 나라인 조(趙)에 이어 우리가 독립적으로 만든 글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12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10월 한국에서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최초로 세계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1만 원으로 구입했다고?
훈민정음은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504년경에 소실되었다가 1940년 경북 안동 어느 마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은 안동에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1만 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내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하였습니다. 당시 1만 원은 고급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는데 당시 '훈민정음 해례본'의 소유주는 1천 원을 불렀지만 그 10배를 지불하였습니다.
간송 선생님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노력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존하다가 해방 후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불러 세상에 공개하였습니다. 이로써 한글이 인체의 발음기관을 상형화한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유일한 귀중본이 500년 만에 발견되어 한글 창제에 대한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도 97-1’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 중 가장 집요하고 악랄했던 것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이었습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한글은,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님이 붙여 주신 이름으로 ‘동방의 큰 글’, ‘세계에서 제일가는 으뜸 글’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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