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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적어도 유나는 그랬다.
엄마는 정신병을 앓았다고 했다. 유나가 아홉 살 때 죽은 외할머니는 엄마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해야 너라도 살 수 있다고, 외할머니는 그렇게 넋두리했다.
유나의 엄마는 꽤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1980년대, 평양 변두리 출신으로 김일성 종합대학에 다녔던 그녀는 중앙당 5과라는 곳에 뽑혀 갔다 돌연 국가로부터 중국 유학을 당했다. 떠났다는 표현보다는 당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설명이라고, 외할머니는 회상했었다.
주 7일 동안 베이징에 위치한 한 연구실로 출근 도장을 찍던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던 날은 장대비가 아스팔트를 찢어 버릴 듯 세차게 퍼부었던 어느 여름밤이었다.
당에서는 가져오라 압박을 가했지만 외국인에겐 열람이 금지되어 있던 서류가 있었다. 중국은 틈을 보이지 않았고 보위부의 재촉은 날로 강도가 높아졌다. 유나의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게 된 날이었다.
유나의 엄마는 숙소에 돌아가지 않고 연구실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하필 그날, 서류의 담당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퇴근 후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그는 서류함을 뒤지고 있던 유나의 엄마를 발견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이기도 했던 담당자는 그녀에게 무척이나 화를 냈다. 공안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금고 안에 들어 있는 총을 찾았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국 측에 넘겨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현듯 깨달은 현실이었지만 모든 것을 바쳐 충성했던 당은 그녀와 선을 그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충성심은 그저 개인의 일탈일 것이 누가 봐도 자명했다. 결국 유나의 엄마는 휴대하고 다니던 칼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을 찌른 후 연구소에서 도망쳤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원래 항상 내 맘 같지 않은 것이 인생이었다.
비가 오는 베이징의 뒷골목은 지저분하고 음습했다. 어디선가 부부 싸움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날의 골목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외딴 행성처럼 외롭고 낯설었다. 그렇게 한참을 장대비 속에서 멍하니 서 있었을 때였다. 우산을 든 남자 한 명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공안은 아니었다. 분명 그녀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굳이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외국인의 억양이 분명한 서툰 중국어였다.
“도움이 필요한가요?”
그리고 어쩌면, 이 한마디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유나의 엄마는 남자를 따라갔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와 그는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식적으로 중국어로만 대화했다. 남자와 달리 유나 엄마의 중국어는 억양까지 완벽했기에 남자는 그녀의 잠꼬대를 듣기 전까지 상대가 중국인이 아니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악몽을 꾸던 그녀가 잘못했습네다를 연발하다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남자가 유나 엄마의 팔목을 그러쥐었다.
“당신, 어디 사람이야?”
“북조선 사람입네다. 억양을 보아하니 그쪽은 남조선 사람이었습네까?”
대한민국과 중국의 사이가 좋으려야 좋을 수가 없었던 냉전시대였다. 의심을 하긴 했지만 남한 사람이 중국에 있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상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듣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행동했다. 아마도 사랑 아니면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유나의 엄마는 훗날 회상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흘렀다. 평소 오후 6시면 회사에서 돌아오던 남자의 퇴근이 그날따라 늦어지고 있었다. 11시가 되고 12시가 되어도 남자는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차마 잠들 수 없었던 그날 새벽, 골목에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유나의 엄마는 골목으로 뛰어 내려갔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골목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익숙한 ‘그’가 아닌 중국 공안들이었다. 다행인지, 그녀를 체포하러 왔다는 그들은 그녀가 중국이 아닌 북한에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신고 뛰어나온 남자의 실내슬리퍼는 소란 도중 잃어버렸다. 그녀는 그렇게 맨발인 채로 북송되었다. 하얀 눈이 탐스럽게 내렸던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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