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습니다.
논문을 쓰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글 하나에서도 여러 사람이 대화하곤 합니다.
항상 여럿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 이 글의 작자는 내향적인 성격입니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에 참여하고프지 않습니다.
나는 한 사람인데 왜 책 속에서는 사회가 돌아가나?
사회를 관찰하란 것인가?
그 사회에는 다시금 말해 주관이 여럿이고
서로가 세계관이 다른 자들이 함께 모여있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여러 사람이 모인 글 하나를 독자는 재판관처럼 봐야 하는가?
꼭 그들이 거친 학문역사를 지금 현재에 대입, 계산을 해야 하는가?
그렇게나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가?
혹시, 그들이 교양있게 떠드는 그 방법들을 익히고 배워야 하는가?
왜 혼자서는 교양이 있을 수 없겠는가?
혼자서도 전방위적으로 교양있는 자는 성인, 군자란 말인가?
성인, 군자이면 안되는가?
개인이 가진 것은 오로지 편협하고 집단이 협의해야 개인이 균형있나?
그들 논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일 대 일로 얘기를 하면 해결이 안되는가?
오직 한 사람과만 얘기를 해도 모든 얘기를 하고
정확히 일 대 일로 최소한 이쪽이나 저쪽으로 선택하도록 평등할 수는 없는가?
죽을 때까지 항상 개인은 집단들을 계산해야만 하나?
그러나 본책 <신비와 우주>의 저자는 모든 독자의 임종순간만을 제외하고서
항상 독자와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
독자를 위해 저러한 모든 집단을 정리하여 그림처럼 하나로 제시한다.
본 저자가 자기 내면에 저들의 모든 고민을 일이관지하게 정리해
저자와 독자 사이에 안팍으로 평등히 균형있게 조망하도록
형이상과 형이하의 동서고금 보편주제들을 실존적으로, 논리적인 판단으로만 적어냈습니다.
나머지 주제항목들은 주제들 사이, 행간들 사이, 문장들 사이에 숨어있습니다.
정신적인 존재이면서 육신 속에서 살아가는, 임종시 오직 한 순간 유일신 앞에 설 독자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망자를 알아보시도록 - "나와 같구나" -
어떠한 주제에든 자기의 답을 얻도록
저자는 모든 독자들을 일 대 일로만 중재합니다.
책을 쓰고서 추후 진전이 계속인데
그래도 사람마다 필요한 사유들이 이 책의 목차와 같습니다.
저자는 가장 크게는 범주론자이고, 이성과 지성의 차이를 알며, 이성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일신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가? 왜 달라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상주의자들은 신을 닮으려 합니다.
다만, 무엇이 선한지에 대하여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제20장을 보십시오, 유일한 신은 내면에 있습니다.
우리에겐 내면입니다.
사람이 혼자 아니고서 어떻게 내면적일 수 있습니까?
이 책을 혼자서 보십시오.
이미 동서고금의 모든 문제는 독자 개인의 안팍을 쓸고 다닙니다.
정신의 초점을 맞추는 법, 이것을 각자 추구하세요.
그 때에 세상은 어두워도, 유일한 신은 자기내면에 있습니다.
학술적으로는, 모든 논자들이 내면으로 능동성이라는 섬세함을 형성하기 바랍니다.
그 재산은 인간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학자들은 실제로 많은 인민들에게 자상하게 기여해야 합니다.
M 이론은 최신물리학의 이상적인 결정체인데
저자가 플라톤인 척하고 볼륨을 잡아줬습니다.
아주 인문적으로 처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마치 산천을 구경하듯 지내고 있습니다.
책 속에서는 이해의 사상이라는 산천을 구경할 수 있고
다른 경우로 음악을 들을 때에는 물 속에 잠긴 미생물처럼 전율합니다.
책을 읽으면서는 찾고 싶은 유토피아의 지형을 좁혀가고
음악을 들을 때에는 가상 화자의 심경에 녹아 유연한 마음이 됩니다.
찾고 싶은 유토피아는 사람마다 다르고, 물론 이것이 모두에게 문제입니다.
제 이번 도서의 찾으려는 유토피아는 일원론적 결론입니다.
임종시에, 유일신께서 주시었던 그림의 없는 조각 하나를 찾아 내 몫을 해결하여
유일신을 거울보듯이 보아 합격해 신의 내면에 수용되려 합니다.
모든 진리를 알지 못할지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신적 과제는 알 수 있습니다.
신적이라는 것은 신을 향하여라는 의미입니다.
왜 신이 되면 안되는가? 누군가 안된다고 하면 그것은 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인민을 정의롭게 사랑합니다.
내향적이면 정의(definition)롭게, 외향적이면 정의(justice)롭게 사랑합니다.
이건 모두가 아기시절부터 이렇습니다.
그리고 누군 이성을, 누군 스승을, 누군 군자를, 누군 부친을 위해 삽니다.
그리고 더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상주의자들이 드글드글하여 일단은 짐작합니다.
적어도, 완전한 지식이 있겠거니 합니다.
왜 항상 터진 판단논리만 있나? 왜 항상 바깥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래서, 집합과 여집합을 모두 합하여 그러면서 모두를 포용하여 그림을 하나 그렸습니다.
꿈에 볼 유토피아, 적어도
나쁜 놈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서라도 마련했습니다.
꿈을 잘 꾸던 분들, 인간의 사상을 꾸던 분들이 인간 육신에 태어났고
이것을 일컬어서 인간의 정신을 읽는다고, 인간의 혼을 읽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비해,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하더군요.
이런 혼 저런 혼 그런 혼 모든 혼들을 읽는, 모든 영들의 주인입니다.
영! 그러면 0과 원점이 떠오르고, 컴퓨터 개론에서는 인덱스와 태그라 하여
원점 기준거리의 지점이 또하나의 원점인 듯이 자기의 지점들을 거느린다고
환상이 많은 세상을 설명중입니다.
'바람이 불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기독교 성경구절).
모든 지점들에서 각종 나비(두께)를 자랑하며 우리가 재산들을 다 갖고 있지만
유일신은 모든 차원의 모든 지점들과 하나의 원점으로 모두를 순간에 두고 있습니다.
왜 그런 신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까? 됩시다.
유일신에게 수용되면 됩니다, 이것입니다.
당연하게 사상적인 문제입니다, 꿈을 잘 꿉시다.
아래는 책의 소개입니다.
독자 가문의 보물이자, 교육계의 교과서 후보입니다.
" 신의 비밀과 우리의 우주, 즉 창조자와 피조물들
즉 일원론과 다원론 사이
동서고금의 주요 형이상적, 형이하적인 주제들을
출생 전후와 사망 전후로 거시적이고 미시적으로
오로지 개인실존 이내에서
명제판단 문장들로서 논리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교과서로 사용하게끔
낭독하도록, 쉽게 번역하도록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