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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에서 서정시는 가능한가?│ 출처: Pexels
백석, 윤동주, 김수영……, 한국 근현대 시에 한 획을 그은 이 시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서정시’를 쓴 시인이라는 점입니다. GQ에서 발표한 글 〈시대에 맞는 서정시〉를 보면 서정시의 시초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서문을 보면 “영웅이나 신을 찬양하는 노래인 서사시와 달리 개인의 주관적 감정을 담고 있는 시”를 서정시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전시의 대표적인 형태인 서사시에서 현대시의 주축인 서정시로 변화한 이 거대한 흐름은 한국 시 역사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정시는 동시대에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요? 〈시대에 맞는 서정시〉에서는 “시의 주류였던 서정시가 지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진단합니다. 하지만 “지금 서정시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조금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요. 즉,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서정시의 가능성을 물을 것이 아닌, ‘지금 가능한 서정시’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가능한 서정시,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서정시에 대해 더 파고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서정시는 여러 시 장르 중에서도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인 ‘나’가 가장 중요하게 자리한 발화이니만큼 어떠한 형식적인 실험에 기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올곧게 자신의 정서를 그리는 것이죠. 따라서 서정 시인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자아에 대한 탐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듣고, 어떤 것을 느끼는지, 그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필두로 정서를 심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면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서정시를 쓰고자 마음먹은 시인들(서정 시인들)은 왜 자신을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걸까요? 이 욕망은 자기 계발 의미와는 다른 결일 것입니다. 어떠한 직업을 갖고, 어떠한 명예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 성취가 아닌,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깊이 있게 알고자 하는 내면적 탐구욕에 가깝죠. 이 탐구를 토대로 움직이는 것이 서정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던진다』 또한, 정직한 서정시의 방식으로 ‘나’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탐구의 구도가 굉장히 독특한데요. 나를 중심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 나를 둘러싼 풍경과 기억들 그리고 타자를 통해 자신을 확장합니다. 시적 발화들이 자신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타자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죠.
수록된 시 중 하나를 살펴보면, 「2023년 5월 31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2023년 5월 어느 하루를 연쇄적인 이미지로 리듬감 있게 전개합니다. 새소리에 새벽잠에서 깨고, 조간신문과 밥솥의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당 풍경 안에서 시인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으로 위안을 삼는지 자문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태도, 이 태도가 시인의 ‘자아 탐구’의 중심이 됩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나의 발화로 묶여 다시 ‘나에게 던져지는’ 이 과정은 과연 어디로 도달하게 될까요?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가장 주관적인 서사’라는 형식인데요. 『나에게 던진다』에는 많은 시들이 구체적인 서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구로 4동 아파트 단지로 변한 해동여인숙, 그 공간 둘러싼 유년의 기억을 직관적으로 그려 낸 「해동여인숙」, 마찬가지로 구로동의 풍경이 파노라마같이 연속적으로 지나가고 있는 「남은 자」 등 시인 본인의 과거를 리얼리티하게 펼쳐 낸 시들이 많은데요. 왜 이러한 형식을 차용했을까요?
시인은 「남은 자」에서 “살아온 것은 과거이고 살아남은 것은 현재다”라고 말합니다. 살아온 사실을 살아남은 현재에서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시인의 시적 태도였던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태도 가장 깊은 곳에는 시인의 아내가 있습니다. 마당에 핀 꽃을 보며, 아내에게 ‘시를 써 보라는 권유’를 듣는 풍경을 그린 「첫 청탁」은 시인 자신의 시적 동력이 아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런 아내를 향한 연심을 서간체로 단정하게 쌓아 올린 「아내에게」를 보면, 시인 주변의 인물, 풍경 등이 시인의 자아 탐구이자 시적 구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외부적인 작용들 모두가 시인에게 자기 자신을 알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시인은 그 보답을 시로써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아름다운 상호 소통 앞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을 시에 적용시켜 돌아봅니다. 내 주변에 무엇이 있어 왔고,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지를 말이죠.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담백하고도 깊은 마음
계절과 일상의 정취로 표현한 사유와 연심의 시편들
『나에게 던진다』는 정득용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각 계절의 정취, 일상의 파편, 그리고 한 사람(아내)에게 보내는 내밀한 마음 등으로 쌓인 시들이 모여 있다. 저자가「시인의 말」에서 말하고 있는 삶을 “관통하기도 하고 비켜 가기도 한 빈곤함을 무릅쓴”(4페이지) 이야기가 해당 시집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이라면, 그 내용을 저자는 ‘어떠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을까.
우선, 계절감을 다채로운 사유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해당 시집의 첫 번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부의 구성을 보면, 「산 벚꽃잎 날린 날」은 “산 벚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극대화해서 표현했다면, 다음의 시 「봄」은 “노랗게 개칠한 동구”, “매화 응원단”, “딱정벌레 한 마리” 등등 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따뜻한 풍경 속에 “혁명”, “불법시위” 등의 강렬한 언어를 침투시켜 사회적인 의미를 자연스레 담아낸다.
두 번째로는 해당 시집의 중심이기도 한 ‘아내를 향한 연심’이 있다. 「시인의 말」에서도 ‘아내에게 보내는 시집’임을 밝히고 있고, 마지막 시인 「아내에게」는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단정한 흐름으로 아내에 대한 마음을 차분히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마당에 핀 백합을 보며 아내에게 시작(詩作)을 권유받는 장면을 그린 「첫 청탁」 또한 화려함을 덜어낸 담백한 풍경으로 독자의 심금을 잔잔히 울린다.
오늘도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걸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죽는 줄 알면서도 살아갑니다
(중략) 이렇게 오늘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오늘도 우리는」
저자가 지닌 이러한 ‘담백함, 단정함’이 결코 화려함에 대비되어 아름다움의 저조로 해석돼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의 시에 담긴 이 가벼움은 가볍게 써서가 아닌, 무거움의 절정에서 한 줌 한 줌을 걷어 냈던 시간이 담긴 총체적 감각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살아갑니다”라는 이 간단한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저자가 앞서 일궈 낸 여러 시편들(담백함들)이 자연스레 한곳에 모여 고요히 아름다움을 피웠기 때문이다.
서정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도 쉽게 접할 수 없는 타인의 내밀한 정서를 감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속사정을 다 알기란 쉽지 않죠. 아무런 작용 없이 자신을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여기, 한 사람이 내밀히 담아 놓은 ‘자아 탐구적’ 언어가 있습니다. 지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료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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