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땅 가이드
우리는 당신과 함께
좋은 책을 만드는
좋은땅 출판사입니다
좋은땅 고객센터
상담 가능 시간
평일 오전 9시 ~ 오후 6시 (점심 시간 12 ~ 1시 제외)
주말, 공휴일은 이메일로 문의부탁드립니다
사는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말이 돌기 시작하더니 한두 세대씩 이사를 시작했습니다. 살았던 동네의 모습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동네 곳곳을 사진으로 남기던 한 주민을 보고 펜을 든 저자의 우리 동네 이야기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시내라고 했지만 촌 동네나 다름없어 농사일로 바쁘던 사람들과, 연휴를 맞은 직장인들이 추석을 맞아 이발소 안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암만해도 오늘 해 전에 내 머리는 깎일 것 같지가 않았다.
아내는 이발소가 거기밖에 없냐고 성화다. 이발소가 들어섰을 법한 길가를 두리번거리다가, 러시아 붉은 광장의 성 바실 성당 탑 모양과 색상의 배열이 비슷하게 생긴 유리 기둥이 돌아가는 곳을 찾아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웃지 않았을 법한 주인이 무표정하게 맞길래, 긴말 필요 없이 짧게! 하고 짧게 말했다.
얼굴을 덮고 있는 억센 털을 마치 돼지털 밀듯이 면도하는데, 간만에 느껴 보는 쓰리디 쓰린 그 아픈 맛에 가학성 시원함을 느꼈다. 어려서는 몸을 움찔하며 공포감까지 느꼈던 구레나룻 선을 자를 때에는 살을 찢는 아픔에서 쾌감까지 느꼈다. 마치 호미로 풀뿌리를 캐내는 것처럼 면도칼로 수염뿌리를 캐내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면 뜨거운 욕탕에 몸담고 앉아서 시원하다고 한다는데, 지금 나는 털이 뽑히는 아픔에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속으로 느끼고 있는 시원함을 알아차리고 심통이 일어났는지 이발사가 내 얼굴에 불을 놓았다. 화들짝 놀라 “으 핫핫핫 뜨거!” 하는 소리를 꼼짝 못 하고 앉아서 속으로만 질러댔다.
경직된 얼굴을 거울에 들이밀고 눈을 떠 보고서 깜짝 놀랐다. 일이십 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육십 노인네를 해병 상사 유 상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내가 이렇게 젊었다니? 필시 내 머리를 떼어내고 남의 머리를 얹어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감고 있을 때의 그 아픔이라면 능히 그럴 만도 했다.
머리 깎을 때의 아픔으로 봐서는 분명 내 어렸을 때의 우리 마을 이발소에 와 있는 것인데, 시설로는 아니었다. 기름때가 절은 긴 가죽 띠를 잡고 돼지 잡을 때나 사용할 투박한 면도칼을 썩썩 비비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공포감을 느꼈었는데, 그 가죽 띠부터 눈에 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