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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 다음 주에 수학여행 가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 놓았던 책가방에서 일정표와 경비가 적혀진 종이를 아버지께 드렸다. 아직 첫 잔을 마시지 않으신 아버지 때문에 두 동생은 밥상 앞에서 내가 드린 종이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는 종이에 적혀진 경비를 입 모양으로만 세는 것 같았다. 봉투를 한두 번 앞뒤로 뒤져 보더니 말씀하셨다.
“선생님한테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못 간다고 해.”
말이 끝나자 맥주잔 가득 따라 놓았던 소주를 들이켜셨다.
그 좋지 않은 형편으로 이렇게 매일 술을 드시는 건가? 너무 원통했다. 몸이 조금씩 떨려 왔다. ‘왜.’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학교 친구들은 다 가는데 혼자만 안 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를 얼마나 더 괴롭히려고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것도 막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두 잔을 마시지 않는 상태다.
아마 이게 마지막이겠지만 다시 아버지께 여쭈어봤다.
“아버지. 친구들 다 가는데 저도 가면 안 될까요?”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두 동생의 밥 먹는 속도를 빠르게 하였다.
“이놈이. 누가 보내기 싫어서 그래? 돈이 없어 못 보낸다고, 돈이 없어서 이놈아!”
“가고 싶지 않아요.”
내 한마디에 반 전체가 조용해졌다. 저번 주부터 흥분해서 매 쉬는 시간마다 이야기했던 수학여행 이야기를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에 친구들은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세상에 수학여행을 싫어하는 초등학생을 처음 보는 눈으로 웃거나 떠들거나 웅성거리지도 않고, 방금 들어갔던 중배마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담임을 마녀라고 별명을 지었었고 이렇게 가까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곧 그녀가 마술을 부릴 것만 같았다.
“가기 싫은 이유를 대 봐!”
벌써 마녀로 변한 선생님이 마녀와 비슷한 목소리로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아무렇게나 대답한 건데 또 아무렇게나 대답할 거리를 찾아야 했다. 왜 초등학생은 거짓말을 생각할 때마다 눈을 위로 치켜세우는지 몰랐었다. 나도 눈을 위로 쳐다보며 머리를 굴렸다. 얄팍한 속임수에 마녀는 넘어가지 않을 거였다. 뭔가 근사한 게 필요했다.
“선생님 제가 멀미를 심하게 해요. 저번에 읍내에 갈 때 귀에 멀미약을 붙이고 갔는데도 죽을 뻔했어요. 수학여행은 가고 싶지만, 멀미 때문에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변명이었다. 친구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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