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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노동일까?
그가 노동에 관한 힘듦을 내색하는 순간, 그리고 그 노동을 가정에 끌고 들어와 한 발 치 가사와 육아에서 멀어지는 순간, 나의 육아는 딱 ‘노동’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서사도 아니었고, 딸과 내가 함께 달리는 성장 드라마도 아니었으며, 이 땅의 미래를 책임지는 순수한 영혼을 보살피는 멋진 레이스도 아니었다. 그가 육아에서 멀어진 채 본인의 힘듦만을 내색하는 순간 나 역시 육아를 노동으로 간주하고 빵 조각 나눠 그램 수 재듯이, 고깃덩이 썰어 한 근 두 근 나누듯이…! 비린내가 진동하는, 핏물 가득한 저울질이 시작되는 것이다.
승자는 없이 양쪽이 처절한 패배자가 되고야 마는, 모두가 똥간에 빠져 허덕이고야 말 그 의미 없고 바보 같은 저울질.
“나는 맨날 밖에서 편하게 있는 줄 아느냐. 밖에서 내가 얼마나 힘든데”
“나는 집에서 애 보느라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종종종”
같은 레파토리로 운을 떼기 시작하면… 지붕 달린 작은집의 소리 없는 총싸움은 시작되는 것.
당신은 잠이라도 푹 자지, 나는 잠을 연속으로 이어 자 본 게 언젠 줄 알아요?
당신은 점심밥이라도 회사에서 주는 대로 편하게 잘 챙겨먹지.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라. 화장실 한번도 제대로 못 간다고!
그가 그동안 나에게 베풀었던 호의, 사랑, 배려, 섬세한 마음과 손길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딱 이 순간이 우리 결혼 생활의 전부였던 것처럼 떠들어댄다. 그 순간 동영은 최악의 아빠로 그 순간 나는 최악의 여자로 변질되어 있었다.
육아를 노동으로 간주하는 순간,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득될 게 없었다.
육아는 노동이 아니라 나의 삶, 내게 찾아온 새로운 계절이었다. 우린 그 전 계절에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졌고, 새로운 옷을 입었다.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너무 빛나는 그 멋진 계절에 맞는 근사한 옷을.
지금도 때때로 손바닥 뒤집듯 육아를 다시 노동으로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육아 앞에 ‘헬’이라는 단어와 ‘독박’이라는 단어를 붙여 나의 이 고단함을 미친 듯이 피력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지옥육아에 나와 아이들을. 독박이라는 그 부정적 단어에 나와 아이들을 욱여넣지 않기로 머리를 흔든다. 괜히 더 힘주어 말한다. 육아는 아름다운 서사, 자연의 섭리. 이 세상이 나에게 준 고귀한 소명! 헬육아 대신 해븐 육아, 독박 육아 대신 독점 육아로 칭하며 스스로를 자꾸 환기한다.
육아라는 노동에 그 험난한 전투에 처절하게 숨 쉬다가 겨우 겨우 잠들어 숨을 쉬고 있는 이 땅의 성스러운 엄마들이여, 노동이란 기차에서 얼른 내려 환승하기를.
세상을 향해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눈빛과 에너지,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내 살결을 부비는 그 작은 손길과 미소뿐 아니라 매일을 볶고 화내고 싸우는 현실까지도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세상이 내게 준 특별한 소명으로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이 아닌. 세상이 말하는 엄마, 나 자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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