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글) 오준엽
인물 상세 정보대학원에서 남성복의 역사와 가치를 연구하고, 글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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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옷은 주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만든 손을 기리는 자리에 함께했다. 나는 묘비에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을 해도 나는 아무것도 적을 수 없었다. 내가 뭐라고 그의 삶을 한 줄로, 그의 정신을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를 적어야 했고, 그의 마지막 말을 적기로 결심했다.
사랑과 감사 속 이곳에 잠들다.
모든 장례가 끝나고 나는 며칠간 밤새운 그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단대에 멍하니 앉아 그의 삶의 흔적을 천천히 살폈다. 그가 남긴 삶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정돈되어 있었다. 항상 말씀하셨듯 죽음을 기다려 온 사람처럼 모든 것이 죽음을 위해 정리해 둔 그런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내가 뭐라고 그런 말을 뭐라도 된 사람 마냥 떠들었는지…. 나는 이 사람을 이해도 하지 못했으면서 내 생각만을 말했을 뿐이었다. 나는 머리를 감싼 채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한동안 땅바닥만 바라볼 수밖에는 없었다.
자책하고 있던 나의 뇌리에 그의 선물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옷장으로 달려가 옷장을 급하게 열었다. 그 안엔 잘 정리되고 관리된, 오래된 옷들과 다이어리 그리고 조그마한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의 편지는 그가 추구했던 인생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너무나도 깨끗한 종이에 깨끗한 글씨, 그리고 정돈된 단어들…. 역시 나는 그에게 더 배울 것이 많았다. 그의 진심으로 적힌 글을 보며 나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아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 없었지만, 그의 편지에는 나를 아들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고아가 되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그가 남긴 옷장과 옷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렇게도 부럽게 느껴졌던 아버지의 옷장은 이럴까 싶었다. 그는 나를 ‘남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결국에 나는 남은 사람의 무게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나는 다시금 재단대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 남은 단 한 장의 패턴을 꺼내 들었다. 나에게 남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정직함으로 사랑과 감사 속에 올바른 옷을 내 손으로 짓는 그 일뿐이리라.
제1장 ······························ 006
제2장 ······························ 023
제3장 ······························ 034
제4장 ······························ 047
제5장 ······························ 062
제6장 ······························ 075
제7장 ······························ 093
제8장 ······························ 103
제9장 ······························ 118
제10장 ······························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