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
철학적 공식이란다. ‘공식’이라니, 틀에 끼워 맞춘다는 생각에 벌써 꺼려진다. 그런데 정작 그 공식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 = 주인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사는 삶 = 노예
스스로에게 적용해보았더니, 아직은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렇다. 이 글을 쓴 저자는 아직 노예다. 세상의 시선에, 가족의 시선에, 형·누나들의 시선에, 친구들의 시선에 뭐 하나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그들이 그리는, 원하는 나의 모습에 부응?副應: 쫓아서 응함?하고자 하던 나였다. 타인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느라 급급했다.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내 모습을 보인다면, 혹여 싫어하지 않을까? 실망하지는 않을까? 떠나가지는 않을까? 다행이다. 글을 쓰기 전까지는, 내가 ‘노예’라는 사실조차도 몰랐었다.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간혹 반항을 하였으나, 이내 스스로 노예의 삶을 선택하였다. 그게 편했으니까, 그로부터 좋은 놈, 착한 놈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내 삶의 주인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제 점점 그 ‘주인’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끝내는 그 모습을 온전히 갖추어 가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출판된 수많은 책들, 그 책의 저자 소개 부분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작가의 출신과 학벌을 밝히던데, 나라고 못하리란 법도 없다. 지방대 출신이다. 그중에서도 대구대학교, ‘하위권 대학’을 졸업하였다. 물론 이 기준은 우리나라의 암묵적이며 공공연한 잣대이자 시선이고, 또한 상당한 힘을 가진 기준이다. 다시 말해, ‘대구대학교’라는 학벌은 세상의 시선에 굴복한 노예인, 내가 입 한 번 뻥긋 못하였던 출신이자 이력이다. 쪽팔려서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내가 하위권 대학에 재학 중이고 있음을 밝혔을 때, 상대방의 인상이나 뇌리 속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상대방 역시도 나와 같은 노예라는 사실을.
영어를 못하는 영어영문학과 재학생이다. 영어는 못하지만, 한글과 생각은 조금 한다. 그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문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사회학과 철학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있는 흥미로운 친구다. 무엇보다 점점 주인의 모습으로 변화해나가고 있는 저자, ‘배성수’가 ‘나’다.
소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