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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0년 만의 고아원 동창회
2019년 07월


 

 

새디라는 전혀 모르는 여성분에게 편지를 받은 때는 1999년이었다. 그 편지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고아원 친구들 중 한 명의 집에서 가진 동창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1997년 5월에 개최된 이 동창회가 아이들의 정원 고아원의 첫 번째 동창회였다. 샘에게 연락을 취하고 이 첫 번째 모임을 성사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새디였다. 그녀의 편지에는 고아원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설명되어 있었다.
 

새디는 편지에서 1999년 한국에서 열릴 동창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몇몇 고아들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녀는 벌써 2003년 메릴랜드에서의 동창회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창회 참석 인원 파악을 위해 참석여부를 묻고 있었는데 참석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우리는 거기에 참석할 수 없어서 할 수 있는 만큼 재정적 지원을 했다. 새디는 2005년에 한국에서 동창회가 있을 거라는 언지도 주었다. 너무 기대가 되었다. 알마와 나는 진지하게 이 동창회 참석을 고려하고 있었다. 마침내 2005년 동창회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북한의 정치적 게임으로 한국 상황이 좀 불안한 상태여서 동창회를 미루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2007년, 새디는 다시 2008년 한국에서의 동창회를 계획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이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디와 그녀의 남편 존이 이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디가 몇 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다. 미국 사람과 결혼했고 미국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는데 한국에도 가족이 있어서 그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있었다. 난 같은 고아원에 있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잘 알지 못했던 고아들과의 역사적인 만남을 위해 아시아나 항공에 몸을 실었다

성대한 동창회는 도착한 다음 날 있었다. 마침내 고대하던 날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1958년 이후로 보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50년 전에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나를 알아볼까?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너무 신이 났지만 동시에 걸리는 것이 있어 약간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모국어를 말할 수 없지 않는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많은 손님들이 와 있었고 늦게 도착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 거기에는 흥분, 미소, 웃음, 악수, 그리고 포옹이 존재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만연한, 기쁨에 가득 찬 웃음은 전염성이 있었다. 나에게도 그들의 흥분된 감정이 전해졌고 그들의 열정도 느꼈다. 오래전 모두들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맘이 울컥했다.

그날 밤 배우자와 같이 온 사람들 혹은 혼자 온 사람들 모두 합쳐 확실하게 30명 정도는 모였던 것 같다. 난 한국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새디가 통역을 해 주고 나와 아내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나이가 많은 분들 몇몇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몇 명은 서툰 영어로 말했다. 나도 몇 명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중 특별히 눈에 익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미국에 있는 누나 글렌다가 프랭크란 이름을 가진 남자와 찍은 사진을 나에게 주었었다. 고아원에 있었을 때 나도 그를 알고 있었다. 사진을 프랭크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는 누나를 보고 무척 기뻐했다. 50년 전에 그 사진을 찍었을 때 그는 글렌다가 우리 누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우리 누나를 정말로 좋아했었다고 나에게 고백했다. 프랭크는 지금 행복하게 결혼해서 그날 밤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방 전체가 담소와 웃음으로 떠들썩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기 시작하자 방은 더 시끄러워졌다. 모두들 다시 새롭게 시작된 만남에 좀 더 편해진 것 같았다.



 
 

새디가 시청에 가서 우리 가족의 기록을 보자고 제안했다. 난 놀라서 아내를 쳐다보고서는 새디에게로 다시 눈을 돌렸다.

무엇을 위해서요? 분명히 어떤 기록도 없을 거예요!

‘설마! 가당치도 않아!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뒤라서 불가능해! 만약에 기록이 있었다면, 내가 1958년에 미국으로 떠날 때 생일 기록과 가족의 정보를 조작하지 말고 찾았어야 했었어.’ 내가 이 여행을 하게 된 동기는 내가 태어난 고향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가족을 찾는 그런 꿈은 오래전에 포기했다.

조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라고 새디가 말했다. 새디의 의견에 동의는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어린 시절, 한국 고아원에서 살다가,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 보내진 '나'(존 엘 케네디). 고아원의 생활은 때로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즐거움이었고, 괴로움이었습니다. 미국으로 입앙 보내진 후에도 힘든 삶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50년 만에 한국에서 고아원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을 만나 포옹하고 웃고 울었던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 온 김에 가족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찾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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