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행의 정석》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아주 오래된 영화인데,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지는 못하실 겁니다. 니콜 키드만이 나온 ‘마이 라이프(My Life)’라는 영화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나름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밥 존슨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지만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신장암을 진단받게 됩니다. 아직 배 속에 있는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밥 존슨은 한 아이의 아빠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아이가 커가는 과정동안 가르쳐 줄 것이 너무 많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런 생각을 해 냅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필요할 때 하나씩 볼 수 있게 비디오를 찍게 됩니다. 남자의 신체적인 변화에 대해서 그리고 사춘기가 되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정신적 조언 등 미래의 아버지가 해야 되는 것들 그리고 자신이 미래의 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을 비디오에 담아 놓게 됩니다. 실제로 그 아이는 조금씩 자라가면서 아빠가 남긴 비디오를 보면서 과거의 아빠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죠.
이유가 어찌됐든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비행을 하려는 계획으로 비행을 시작하였지만 지금까지 외국에서만 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엔 한국의 항공사라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이제 갓 시작한 제주항공 정도였습니다. 조종사로서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조종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넘쳐나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조종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한국이라는 국내항공사에만 연연하지 말고 차라리 외국의 항공사들로 눈을 넓혀 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의 노력도 있었지만 운 좋게도 싱가폴에서 작은 항공사에 조종사로서 취업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싱가폴엔 한국인 조종사가 한 분도 안 계셨습니다. 조종사 License는 있지만 한번도 항공사에서 비행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습니다. 항공사의 비행을 단순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경유해서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각 국가들의 규정과 절차 그리고 혼자가 아닌 승객을 태우고 비행을 하는 항공사이기 때문에 승객관리부분 등 조종사License를 취득하는 과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 또한 무작정 좋다는 또는 필요하다는 책들을 책상 위에 모아 놓고 이것 봤다가 또 저것 들춰 봤다가 하는 그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습니다. 지금은 비행을 해 온지 오래됐고 그런 시행착오에서 쌓여 온 지식들이 그동안의 경험들과 어우러져서 나름의 체계를 잡고 있는 것이죠.
한국의 항공산업은 그 규모의 면에 있어서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장하는 항공산업의 중심에 조종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작하는 조종사들의 비행지식과 그 역량을 충분한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과연 항공사들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비행은 구전(口傳)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조종사들끼리의 말로써 비행지식이나 경험을 전하고 그것이 비행의 원칙인 것처럼 따르고 답습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장님은 이렇게 하시는데, 그 기장님하고 비행할 땐 그렇게 따라야 돼?’ 또는 ‘여기에서는 비행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어떠한 근거없이 이루어지는 비행이 바로 구전비행인 것입니다. 모든 비행의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Manual referenced flight’입니다. 즉, 모든 비행은 매뉴얼의 근거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제가 외국에서 철저하게 배운 것들 중에 그 첫 번째입니다. 매뉴얼에 근거해서 비행을 해야 한다는 그 마인드가 조종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외국항공사에서 비행을 하면서 배운 것들이 한국의 것보다 반드시 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국과 다른 그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저의 경험과 생각들을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해 줄 수는 없지만 책이라는 소통수단을 통해서 한국의 조종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마치 밥 존슨이 얼굴을 맞댈 수 없는 미래의 아들에게 남기는 그 비디오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2020년의 조종사 정성조가 2002년의 조종사 정성조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2. 책 내용 중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비행학교를 들어가서 처음 배운 내용이 바로 ‘Aviate Navigate Communicate’입니다. 이것은 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비행을 시작하는 모든 조종사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배우는 대전제와 같은 것입니다. 사실 그때만해도 타이틀만 조종훈련생이지 그냥 비행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비조종인이었죠. 그래서 그때는 ‘Aviate Navigate Communicate’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Aviate Navigate Communicate’를 설명하자면 간단합니다. 조종사가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임무는 비행기를 안전하게 조종해야 한다는 것이 ‘Aviate’입니다. 상식적으로 비행기를 조종하지 못하는 조종사란 있을 수 없는 것이겠죠. 그러고 나면 이제 비행기가 가야 할 길을 잘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Navigate’입니다. 비행을 목적은 A에서 B까지 안전하게 도달하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하늘의 많은 비행기들을 도와주고 통제하는 관제사들과 소통하라는 것이 ‘Communicate’입니다. 이렇게 아주 상식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조종사들이 이 순서를 바꿔 버리는 바람에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비상상황에서는 조종사들조차 긴장하고 당황하는 것은 인간이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이 대전제인 ‘Aviate Navigate Communicate’의 순서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서 다루었던 스위스항공111기의 사고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것입니다.
3. 비슷한 주제의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만이 가진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면?
지식을 전달하는 비행 관련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외국의 책들은 그 내용적인 면에서 거의 모든 부분을 망라한 책들이 각 나라마다 많이 있고 국내에서도 조종사 그리고 비행 지식에 관한 책들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종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조종사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방식의 책은 외국이든 국내이든 아직 본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비행의 정석》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자에게 저자가 하고 싶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호소력인 부분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비행내용을 나열하듯이 늘어놓으면 책을 읽는 조종사들 또한 그 집중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마치 커피숍에 앉아 선배조종사가 후배조종사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이해하기 쉽고 책이라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문장의 형식이나 어체(글의 말투)에도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책이라는 것은 결국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4. 저자님은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나요?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나 영화, 노래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닙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러한 제가 책을 연달아 그리고 새로운 책이 언제 나오나 하고 기다린 분이 있었습니다. 심리학 교수 김정운 님이 쓰신 책들입니다. 그분의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작하였는데, 사실 그 책이 김정운 교수님의 첫 책이 아닙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그 분이 쓰신 모든 책을 읽었습니다. 심리학 교수님이 요상한 제목들로 독자를 현혹(?)해서 책을 팔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 하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을 자세히 읽어 보면 본인이 십 수년간 독일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심리학을 그리고 어색하고 어려운 자신의 전공 내용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쉽고 그리고 전달력 있게 이야기하듯이 써 내려 가셨습니다.
이쯤 되면 눈치를 채셨지요? 예, 제가 《비행의 정석》을 어떠한 방식으로 써야 할까 고민을 할 때 그 김정운 교수님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쉽게 그리고 이야기하듯이 쓰자!’라고 마음먹게 된 것이죠. 김정운 교수님의 책을 한번쯤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5.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이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잘 되고 있는데 뭘. 내가 하고 있는 이 비행도 아주 훌륭해!’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계신 비행도 정말 훌륭하고 멋지십니다. 하지만 이런 건 어떨까?
‘내가 하고 있는 이 비행을 좀 더 안전하고 훌륭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자신과 같은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경험을 듣는 것은 나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나의 객체를 가지고 그 보고 있는 위치에 따라서 그 객체의 모습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고 보는 이에 따라서 그 객체에서 나오는 느낌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비행처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러한 분야에서는 지금보다도 더 안전하게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비행을 하는 방법을 서로가 공유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책을 접하게 되는 많은 조종사분들은 분명 국내에서 비행을 하시는 조종사들일 것입니다. 동일한 객체인 비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 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항공사에게 비행한 조종사는 과연 어떠한 시각으로 비행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의 폭을 넓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고 있는 그 비행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6.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비행에 관해서는 아직 저 자신도 많이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두바이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조종사로서 지경을 넓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 각국으로 그리고 다양한 지역을 비행하면서 경험과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근무하는 항공사의 4500명 조종사들은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입니다. 그들은 저와 또 다른 경험과 비행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조종사로서 더 폭 넓은 관점으로 비행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배울 것입니다.
《비행의 정석-초석》은 제목처럼 비행의 기본이 되는 조종사의 마인드와 지식내용을 담아냈습니다. 부제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그 뒤 후속편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초석’ 편이 기본내용이라면 그 뒤를 잇는 후속편은 같은 비행이라도 좀더 그 내용을 깊게 해석해 보려는 시도가 될 것입니다. 물론 첫 편인 ‘초석’이 성공을 거두어야겠죠?
조종사로서 한국의 비행발전에 기여하여야 한다는 책임은 언제나 가지고 비행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나름의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나가는 이들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