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제, 취업문제, 결혼문제, 건강문제 등등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을 찾던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멈춘다. 그러고는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이 좋다는 것이다. 이 정도에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 찾았냐는 듯이 돌아선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수준이다.
교회가 ‘성공(成功)’을 사람들 앞에 나를 세우는 것으로 가르쳤다. ‘성공’을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세우는 것으로 배웠다. 정말 부끄럽지만 우리는 ‘성공(成功)’을 엉터리로 가르치고 엉터리로 배웠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성공’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되, 날마다 조금씩 더 거룩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참된 이유이다. 이 세상 누가 공의(公義)로운 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가? 없다. 오직 어린 양의 피로 깨끗해진 하나님의 백성들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영예로운 일이다. 이것보다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더 큰 성공은 없다. 우리가 우리의 죄성(罪性)을 이기고, 하나님의 은혜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서기까지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을 연습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연단(鍊鍛)이 존재하는 이유이다.